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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설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43집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114 - 135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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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이른바 임오화변은 조선시대 정치사에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사건이다. 이것을 잘 알면 조선 정치의 역학을 잘 읽을 수 있는데, 중요한 사건인 만큼 이견이 적지 않다. 이견을 대표하는 자료로 『한중록』과 「현륭원지」를 들 수 있는데, 두 문헌은 임오화변의 해석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사인을 사도세자의 광기와 영조를 향한 도발로 인한 처벌로 본 반면, 「현륭원지」는 모호한 서술 속에 품성과 자질이 우수한 사도세자가 역신들의 모함을 받아 죽은 것으로 이해하게 했다.
「현륭원지」는 임오화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시각을 지닌 핵심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 성격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 「현륭원지」는 장례 때 무덤에 넣은 묘지문이니, 본고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1789년 사도세자 무덤의 이장 과정 속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정조는 이장 중에 사도세자의 구묘에서 영조가 써서 넣었던 묘지문이 발굴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것은 그냥 묻어버리게 하고, 새 무덤에는 자신이 직접 쓴 묘지문 곧 「현륭원지」를 묻었다. 조선 왕실의 이장 관례에 따르면 구 묘지문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버리고 새 묘지문을 쓴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고는 그 이유를 구 묘지문 곧 「영조친제지문」과의 비교속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버려진 구 묘지문은 1968년 서울위생병원 간호학교 신축 공사 중에 사도세자의 무덤 壙中에서 기적적으로 발굴되었다. 이 묘지문은 영조가 그린 사도세자의 인물상을 명확히 보여주는데, 사도세자를 세상 어떤 사람보다 무도한 미치광이로 그리고 있다. 정조로서는 아버지를 미치광이 반역자로 그린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구 묘지문은 묻어버리고 자신이 새로운 전기를 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조가 새로 쓴 묘지문 「현륭원지」는 사도세자의 잘못은 감추면서 탁월한 성품과 자질만 기술했고 죽음은 모호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도록『열성지장』 등에 올리지 않게 했다. 이런 「현륭원지」의 사건 축소적 성격을 알아야 이 자료는 물론 임오화변의 실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현륭원지」에 대한 종전의 이해
Ⅲ. 이장 과정과 묘지문
Ⅳ. 「영조친제지문」과 「현륭원지」의 비교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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