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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광연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91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101 - 120 (20page)
DOI
10.18587/bh.2020.6.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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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7세기 경상남도 울산(언양)에 있는 가지산 석남사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가지산 석남사는 범일국사의 제자인 태고 낭적이 입적한 장소이다. 그런데 『석남사사적(石南寺事蹟)』 등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가지산 석남사를 가지산문의 개조(開祖)인 도의(道義)가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 사찰 역사가 바뀐 것일까?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17세기 조선의 전역에서는 사찰 재건이 진행되었다. 석남사도 1666년(현종 7) 언양현감 강응의 시주와 소속 승려들 원력으로 중창이 이루어졌다. 지역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불사를 행한 뒤 유명한 승려와의 연결을 꾀하였고, 이후 설송 연초(雪松演初)가 참여하였다.
설송 연초는 청허계(淸虛系) 편양파(鞭羊派)의 적전(嫡傳)인 환성 지안(喚醒志安)의 직제자로, 가지산 석남사와 편양파와의 상관성을 집작할 수 있다. 편양 언기(鞭羊彦機)는 태고보우(太古普愚)를 조사로 내세우는 새로운 계보인 태고법통설을 주장하였다. 불교계에서는 병자호란을 계기로 태고법통설이 주류 견해로 정립되게 되었다. 편양파는 물론 청허계의 다른 문파들도 태고법통설을 수용하였다.
17세기 전반의 태고법통설에서는 중국 ‘정통’ 법맥만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석남사사적』에서는 태고 보우의 국내 법맥인 도의가 강조되고 있다. 이는 임진~병자년의 전란 이후 등장한 자기정체성의 표출로서의 정통론적 역사 인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국 역사를 고대사부터 주체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17세기 후반 석남사 일대의 승려들은 태고법통설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가지산문의 유구성 ․ 정통성을 내세우고자 석남산을 가지산으로, 낭공 행적의 부도를 도의의 부도로 바꾸었던 것이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 석남사 기록의 변화 양상
Ⅲ. 석남사 기록의 변화가 지니는 함의
Ⅳ. 석남사 도의창건설과 조선후기의 역사 인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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