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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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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19 - 14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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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4월 9일부터 7월 1일까지 벌어진 통신사 사행절목 강정을 둘러싼 조선의 왜학역관과 쓰시마의 차왜 간의 치열한 교섭 상황을 한국 및 일본 사료를 면밀히 살피며 고찰하였다. 사행절목 강정의 개관을 기록한 『증정교린지』에는 ‘구관백전(舊關白前) 예단 및 배례’ 건이 처음에는 조정으로부터 전례가 없다고 거부당했으나 ‘결국 특교로’ 시행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이라는 말에 단순하지 않은 강정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을 갖게 되어 『조선왕조실록』, 『통신사등록』, 『비변사등록』, 일본의 대마도종가문서 『신사기록』을 살폈다. 『통신사등록』을 보면, 통신사청래차왜가 다례 날(4월 9일)에 차비역관 신영래에게 전달한 절목은 일본 막부나 쓰시마 도주의 뜻과 다르게 차왜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라고 영조가 단언할 정도로, 처음에는 절목 속의 구관백전 예단 및 배례를 거부한다. 5월 12일에 통신사 삼사가 구관백은 죽은 것이 아니기에 에도(江戶)에서 대면할 수밖에 없어 이 절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청을 올리자, 허용하되 절목에 넣지 않기로 한다. 『비변사등록』 6월 5일조에는, 구관백은 이미 통신의 의리가 있어 예단 및 배례를 허락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소식이 차왜에게 전달된 것이 6월 24일이며, 정식으로 비변사의 관문이 전달된 것은 7월 1일이었다. 왜관에서는 이 5~6월까지의 2개월간에도 구관백전 예단 및 배례를 절목에 넣을 것을 조선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설명했다. 동래의 역관들은 동래부사 및 접위관과 차왜 사이에서, 단순히 언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동래부사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면담도 거절당하기도 하고, 차왜에게 강한 재촉도 받아가며 또 치열한 논쟁도 벌인 모습을 『연향(延享) 신사기록 三』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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