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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인성 (경희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3호
발행연도
2021.5
수록면
7 - 28 (22page)
DOI
10.21490/jskh.2021.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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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력사강좌」는 사회교육, 성인교육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인민의 역사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식민주의 역사교육의 폐해를 불식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일제시기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낙랑군이 420여 년 동안 한반도의 북부를 지배하였다고 가르쳤다. 이는 조선이 일찍이 또 오랫동안 중국의 식민지 내지는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는 歷史像을 교육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조선인민력사강좌」에서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1950년 전후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종래의 ‘낙랑평양설’을 부정하고, 낙랑을 비롯한 한 사군의 위치를 요동에 비정하는 설이 대두하였다. ‘낙랑요동설’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조선인민력사강좌」에 채택되는 등 정설처럼 되었다. 이는 새로운 국가의 새 서울인 평양이 과거 ‘식민지’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 민족주의의 ‘영토순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社會敎育으로서의「朝鮮人民歷史講座」
3. 植民主義 歷史敎育의 淸算
4. 餘論: ‘樂浪平壤說’ 否定의 裏面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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