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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경준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6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57 - 39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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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644년에 단행된 北京遷都 이후 淸朝의 만추리아 정책과 전개양상을 특히 盛京 지역에 초점을 맞춰 고찰하는 데 있다. 주지하듯이 淸朝는 16 세기말 퉁구스계의 주션~만주인에 의해 건설된 국가로 당초 만추리아 일대를 거점으로 하는 지역국가였다. 1644년 淸朝가 산해관을 돌파하여 明의 수도 北京에입성하는데 성공하자 北京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동시에 八旗의 이주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원래 盛京에 거주하고 있던 旗人과 그 家屬· 奴僕의 대부분이 北京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그 규모는 최대 100만명에 달했으리라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漢地 정복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盛京 일대에 주둔하던 呉三桂를 비롯한 漢人降將의 병력까지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漢人降將 휘하의 군사와 그 家屬 약 20만명까지 추가로 빠져나감으로써 盛京 지역은 거의 모든 인구의 유출에 직면하게 되었다. 盛京은 제국이 발흥한 發祥之地로서 그 의미가 각별하였다. 그런 까닭에 淸朝는 北京遷都에 발맞추어 즉각적으로 盛京 지역의 지배체제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먼저 盛京을 陪都로 지정한 뒤 留守 부대인 駐防을 설치하고 그 사령관으로서 盛京將軍을 개설하였다. 盛京將軍이 盛京 일대의 駐防에 소속된 旗人을 관할하였다면, 행정단위로서는 설치된 府·州·縣에서는 民人을 통치하는, 이른바 旗民制가 실시되었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인구 유입을 도모하기 위하여 ‘遼東招民開墾令’을 반포하였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戶籍에 등재되지 않은 流民이 급증하며 치안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 본토로 진군한 漢人 출신 降將들은 反淸 세력을 토벌한 공적을 인정받아 藩王에 봉해져 이후 三藩이라 불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平南王 尙可喜가 주둔지인 廣東을 떠나 盛京 지역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는 上奏를 올린 것을 계기로 三藩의 동향은 盛京 지역과 다시 긴밀하게 맞물리게 된다. 三藩 세력이 귀환하고자 하는 지역이 盛京 일대였기 때문에 徹藩論의 핵심 의제는 三藩과 같은 대규모 집단의 이주를 승인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盛京 지역의 生計 문제에 집중되었다. 즉 遼東招民開墾令과 같은 정책을 통하여 불러 모은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새롭게 이주할 三藩 세력에 의해 빼앗길 우려가 조정 내부에서 국가적 현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처럼 盛京 일대를 대상으로 추진했던 大淸의 초기 정책은 漢地 지배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제국의 發祥之地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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