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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수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68호
발행연도
2017.7
수록면
1 - 2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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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閑齋 申叔舟(1417~1475)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를 섬긴 인물이다. 그는 세종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세조에 의해 중용된 인물이다. 조선 초기 왕위 계승이 嫡長子가 아닌 定宗·太宗·世宗으로 이어졌고, 세종에 이어 文宗이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안정되는 듯하였으나, 2년 3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으로 인해端宗이 문종의 장남으로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宗室과 대신들 간에 국정운영 방식의 이견으로 갈등하다가 首陽大君이 癸酉靖難(1453)을 일으켰고, 단종이 世祖에게 禪位의 형식으로 왕위를 내어준다. 계유정난은집현전 출신 학사들을 명분과 현실 추구의 두 파로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후 端宗復位사건으로 명분을선택한 死六臣의 忠節논의와 현실을 선택한 이들의 變節논의가 역사에 중요한 화두로 남는다. 肅宗대에 와서 단종의 복위가 이루어지는 端初는 세조의 ‘當代의 亂臣이요, 後世의 忠臣’이라는 말이었다. 보한재는 변절자라는 불명예에 시달린 인물이었지만 일방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시대상황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한재는 學問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고, 또한 中庸의 처신으로 자신을 절제한 인물이다. 國政에 임해서는 각 분야에 정통해 직무에 대한 강한 自矜 心을 지녔다. 語學에 뛰어나고 외교와 국방의 현안에 대해 멀리 내다보는 叡智力을 갖추고 대비하였다. 事大와交隣, 懷柔와 羈?를 적절히 구사한 그는 특히 對日외교에서 고려시대의 鄭夢周와 함께 일본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한 인물이었다. 보한재의 내면을 그의 漢詩 작품을 통해 분석했다. 1) 그는 明良相遇의 時運을 희구한 인물이었다. 2) 職務 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고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3) 보한재는 李施愛의 난을 겪고 성종의 士林政治를보면서 功業에 대한 회의와 인생무상을 토로한다. 보한재의 모습을 추적하면서 功過를 통해 그의 본 모습을재구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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