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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기림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58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209 - 242 (34page)
DOI
10.15859/yscs..58.2017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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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개화기 및 일제 강점기 초의 강진 유림이었던 景晦 金永根이 남긴 영물시를 고찰하였다. 경회는 1865년 강진에서 태어났다. 吾南 金漢燮과 重菴 金平默을 사사했다. 이들은 華西 李恒老의 衛正斥邪 정신을 계승하였는데 경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여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으로 삼았다. 을사늑약 및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후 이주 목적 또는 항일 활동 목적으로 간도에 갔으나 잠시 머물렀을 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흥리에 학사를 열고 후학을 가르쳤다. 한편 人道公義所 와 같이 유교 부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모임에 적극 참여했다. 경회가 이런 활동을 한 것은 유림으로 자처하며 유교를 수호하고 유학적 소양을 지닌 후학을 양성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모두 1,527수이고 그 중 약 140여 수가 영물시이다. 그의 詠物詩는 서양과 일본을 배척하는 위정척사 정신과 존화 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을 배반하고 참혹한 백성들의 삶에 고통을 가중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放棄했던 조선 대신과 지방 목민관들을 준엄하게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서양 및 일본에 의해 夷化하여 윤리가 타락하고 이익 추구가 만연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의식, 자각, 분별력 없는 일반인들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경회는 사회, 세태에 대한 비판의 준거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신을 비판하면서 부끄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기 위한 자기 警戒 및 단속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경회 영물시는 영물시 영역 안에 위정척사와 존화 정신 및 자기 반성 등의 내용을 확장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척사 정신을 읊음으로써 당시 유희적, 친일적인 한시 풍조에 저항했고, 오랑캐 공간으로 변한 조선 사회에 대한 문학적 저항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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