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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찬우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9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85 - 130 (46page)
DOI
10.31218/TRKH.2023.3.14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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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삼국 분쟁의 격화와 당의 개입이라는 역사상은 640년대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신라와 당의 연합, 고구려·백제의 멸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국 역사상 중대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626년경에도 삼국 분쟁에 당이 朱子奢를 파견하여 개입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대체로 당 고조대의 사건으로 보아왔지만, 이 글에서는 사료비판을 통해 당태종이 朱子奢를 파견했음을 밝혀보았다. 아울러 주자사의 사행 목적은 회맹의 제안에 있었고, 그것이 627년 연말 당 조정에서 삼국 사신의 회합으로 실현되었다고 추론했다.
627년 회맹에서 당 태종이 주재하는 가운데 삼국은 장래의 화평을 약속했다. 백제 무왕은 사죄의 표문을 당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백제는 627년 이후에도 신라 침공을 멈추지 않았다. 당의 입장에서 보면 백제는 ‘군신 간의 약속’을 어긴 셈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640년대 이래의 사료를 보면 당의 백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백제가 원격지에 위치함을 믿고 약속을 쉽게 어긴다거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인식이 백제가 627년의 회맹에서의 약속을 파기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해보았다. 당의 부정적 백제 인식은 640년대 이후 양국 관계의 악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620년대 중반의 삼국 분쟁과 회맹을 640년대 이후 역사상의 기점으로써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626년경 삼국 분쟁에 관한 기록 검토
Ⅱ. 삼국 분쟁의 실상과 朱子奢의 활동
Ⅲ. 당의 삼국 분쟁 개입 후 백제 인식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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