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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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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여성구 (독립연구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8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4 - 71 (6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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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입당구법승 惠覺은 그동안 비밀에 싸여있던 승려였다. 崔致遠이 지은 「大唐新羅國故鳳巖山寺 敎諡智證大師寂照之塔碑銘幷序」에 이름만 나와 있다가 2009년에 발견된 「大唐□□□□寺故覺禪師碑銘 并序」를 통해 혜각 연구의 단초를 열기 시작하였다. 본 글은 새롭게 발견된 혜각의 탑비를 통해 그의 생애와 사상을 규명한 것이다. 그런데 혜각비는 완전한 것이 아니고, 4분되어 현재 2부분만 남아있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惠覺(?~774년)은 金氏로서 진골출신으로 이해되며, 23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입당 시기는 비의 결락으로 알 수 없고, 입당 목적도 분명치 않다. 특히 입당 후 당의 승적을 받아 邢州 開元寺 소속의 승려가 되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일반 신라 구법승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인데, 당의 승적을 받았기 때문에 唐僧과 같은 처우와 의무를 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때 신라로의 歸鄕을 사실상 접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탑비는 현재 邢州 漆泉寺址에 있기 때문에 邢州를 주요 전법지로 이해하고 있으나, 鎭州金이라는 「지증대사적조지탑비」의 기록을 볼 때, 鎭州 또한 그의 주요 전법지 중 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활동했던 때는 安史의 난이 발발했던 시기로서 그가 머물던 하북성 鎭州, 邢州 등은 그 난의 중심에 자리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고, 자연히 그의 활동 역시 제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혜각은 입당 전에 『瑜伽師地論』과 『楞伽經』을 공부했으며, 입당 후, 神會(684~758년)로부터 頓悟, 無念, 知見 등의 荷澤宗禪을 배우고, 나아가 一覺사상을 교화 방편으로 삼았다. 특히 일각사상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으며, 그가 입당 전 이 경론을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혜각의 선사상 형성에 『능가경』, 『금강삼매경』, 『대승기신론』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한 경론은 원효가 주석한 대표적인 경론이기도 하다. 아마 혜각은 원효의 저술에 깊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입당 후 하택종선을 합하여 자신의 전법 사상으로 자리매김하였을 것이다. 혜각은 一切諸法은 一心(一念)이고, 일체중생은 本覺이라고 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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