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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옥성득 (UCLA대)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9호
발행연도
2023.9
수록면
5 - 3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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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87년에 설립된 정동장로교회(새문안교회)의 설립일에 관한 1차 자료를 재검토하여, 2018년부터 제기된 9월 20일 설을 비판하고, 기존의 9월 27일 설을 확증하려고 한다. 이 논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14인의 세례교인으로 조직되었는데 그날 두 명의 장로를 피택했다. 이것이 한국의 첫 지역 교회이자 장로교회인 정동장로교회의 조직이자 설립이었다. 두 명의 장로는 의주 출신으로 서상륜의 사촌들이었다. 10월 2일 주일 두 사람은 언더우드 목사와 로스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았으며, 한국인 한 사람이 추가로 세례를 받았다. 9월 20일 창립설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는 본문 독해의 오류와 더불어, 다른 상호 검증이 가능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1887년 9월 27일~10월 2일에 조직된 새문안교회에는 15명의 세례교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서울 거주 신자들이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의주와 소래 출신 상인이었으나, 1882년 서상륜이 서울에 왔을 때 은밀히 전도할 수 있는 대상은 동향인들이었으므로, 자연히 그들 중에 첫 신자들이 나왔다. 많은 사서들이 ‘의주 출신’이나 ‘소래 출신’이라는 말을 오해하여 의주나 소래에 거주하는 신자들로 보았다. 따라서 1887년 새문안교회는 경기도와 황해도·평안도를 아우르는 전국적 교회도 아니었고, 그 당회도 전국의 장로교회를 치리하고 목회하는 당회도 아니었다. 그 본래 이름대로 정동에 있는 지역 장로교회인 정동교회였으며, 당회도 개교회의 당회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창립일에 관한 기존 견해들
Ⅲ. 1887년 9월 27일 창립
Ⅳ.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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