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원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85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209 - 240 (32page)
DOI
http://dx.doi.org/10.18347/hufshis.2023.85.20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에서는 몽골제국 초기의 군제가 제국의 팽창을 거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쿠빌라이가 대칸에 오른 이후 군제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군제의 측면에서 나타난 몽골의 중국 통치의 양상과 그 특징을 검토했다. 몽골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를 지배하에 두었다. 이러한 군사력은 군사 개개인의 우수성뿐 아니라 칭기스칸시기의 십진법에 기반한 千戶制의 견고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몽골제국 팽창 과정에서 정예 병력인 케식군과 몽골군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 군사가 편입되어 형성된 탐마치군을 선봉으로 몽골은 유라시아 전역으로 팽창해갔다. 우구데이시기 몽골의 대금 전쟁 과정에서 몽골군에 상당수의 漢軍 병력이 편입되면서 몽골은 이들을 별도의 軍戶로서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몽골에서는 民戶와 軍戶가 분리되어 관리되기 시작했다. 쿠빌라이시기 몽골의 중국 통치가 카안의 직접 지배로 전환되면서, 중국에서 몽골 우위의 지배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군사 제도가 개편되었다. 원 초기 쿠빌라이는 제왕 휘하의 병력, 한인 세후 병력 등 몽골, 색목, 한인 무장들 휘하의 병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군사적 위기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樞密院, 行樞密院 등의 기구를 세웠고, 자제들에게 王號와 印章을 하사하여 변방의 분봉 지역에 배치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내지에 대한 군사적 감찰을 강화하면서 대칸 울루스 외부의 반란에도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한편, 쿠빌라이는 몽골제국초기부터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정복한 후 각 지역의 요충 지역에 군사를 주둔시켰던 전통을 따라 북중국과 새롭게 정복한 강남 지역의 요충지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鎭戌제도를 실시했다. 북중국의 군사 요충지인 河落과 山東 지역에 몽골군과 탐마치군을 주둔켰고, 양자강과 淮河 남쪽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강남 지역에는 漢軍과 新附軍이 주둔함으로써 소수의 몽골 통치자들은 중국 지역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점했다. 이상의 제도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몽골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통치 환경에 조응하는 군사제도를 정비하면서도 군제에서 몽골제국 초기 군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