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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논집 제81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39 - 6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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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에 파평윤씨(坡平尹氏)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1) 가문이 배출한 한 학자를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하는 글이다. 반호 윤광안(1757∼1815)은 정조(正祖)가 즉위할 무렵에 벼슬길에 나아가 임금에게 인정받아 1807년 경상도 관찰사에 올랐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소론계 중요 인물로 지목을 받아 노론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불행하게 말년을 보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윤광안은 당쟁으로 중병이 든 조선을 되살리려고 하였다. 또 민초(民草)들의 고달픈 삶에 무한한 동정심을 표하면서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현실 정치에 매우 밝았으며 개혁사상을 지녔다. 윤광안의 학문 기반은 궁극적으로 명재학(明齋學)에 있었다. 윤증의 학문 정신에 따라 수약무실(守約務實) 넉 자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다. 특히 입지(立志)와 무실(務實)을 중시한 것은 명재 윤증 집안의 학문을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준다. 윤광안의 무실정신은 곧 실학사상의 기반이었다. 윤광안은 양명학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천상으로 유익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엮은 변지록(辨志錄) 에 왕수인(王守仁)의 중요한 언설들을 뽑아 소개하기도 하였다. 양명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강화학파(江華學派)를 비롯한 여타 소론계 학인들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향후 학파적 연계성에 관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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