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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재봉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66집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121 - 178 (58page)
DOI
10.17857/hw.2024.12.6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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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외위 非干群의 성립 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구성되었다. 이 글에서는「중성리비」 4행의 19번째 글자에서 5행의 19번째 글자에 이르는 구절을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과 관등제에 관한 다양한 학설을 바탕으로 외위一 伐,더 나아가서 외위 非干群 전체의 성립 과정을 분석하였다. 「중성리비」 시기에는 주류부와 비주류부 관등 체제에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신라 초기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마립간 시기 이전에는 6부가 동일한 관등 체제를 사용하였다. 6부가 공통적으로 사용한 관등 체제를 초기 관등 체제라고 한다. 이 초기 관등 체제는 干支-壹伐-一尺-彼日-阿尺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마립간 시기에 초기 관등 체제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주류부가 자신들이 사용하던 초기 관등을 수장층을 의미하는 단어인 干支와 결합시켜 某干支 형태의 관등을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주류부의 관등 체제는 초기 관등체제에서 麻立干 또는 王-某干支 관등/ 壹伐-一尺-彼日-阿尺(위치 불분명)으로 그 구조가 변화하였다. 주류부와 달리 비주류부는 초기 관등 체제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마립간 시기에 주류부와 비주류부 관등 체제로 이중화된 이중 관등 체제가 성립하게 되었다.
마립간 시기에 일어난 주류부의 관등 체제 변화로 인해서 주류부 내부에 있던 초기 관등 壹伐, 一尺, 彼日, 阿尺은 干支를 보좌하는 본래의 의미와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왕경의 관등 내부에 본래의 의미와 역할을 상실한 관등을 그대로 두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주류부는 자신들이 사용하던 관등 체제 내부에 있던 초기 관등들을 외위非 干群으로 변화시켜서 초기 관등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520년에 주류부의 수장인 법흥왕은 초기 관등들을 외위 非干群으로 전환하였다.
520년 율령 반포로 초기 관등 체제에 있었던 구조가 외위非 干群으로 이식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식된 초기 관등 체제의 구조는 지방 관등인 壹金知의 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외위 干(支)-一伐-一尺-彼日-阿尺-壹金知(지방 관등)으로 구성된 외위 非干群 체제가 탄생하였다. 그리고「봉평비」 가 건립된 524년 이후의 어느 시기에 壹金知는 소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서 최종적으로 외위 干支-一伐-一尺-彼日-阿尺의 구조만이 외위 非干群의 체제에 남게 되었다.
주류부의 정점에 위치한 법흥왕이 초기 관등 체제를 외위 非干群 체제로 개편한 이유는 총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위에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물질인 초기 관등들을 제거하여서 경위의 구조를 보다 합리적으로 재편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초기 관등들을 외위 최하위 관등으로 바꾸어서 지방의 최하위 지배층도 왕경 주류부의 영향력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중성리비」 壹伐의 성격을 통해서 본 외위 一伐의 성립 과정
Ⅱ. 초기 관등 체제에서 외위 非干群으로의 변화 과정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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