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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민정 (국립부경대)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7집
발행연도
2025.2
수록면
119 - 144 (26page)
DOI
10.18496/kjhr.2025.2.8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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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조선과 일본이 평화적 교린관계를 유지하는 과정 중에 연례송사가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던 사례의 소개 및 양국의 소통과 협의로 충돌 최소화를 추구한 노력을 확인했다. 연례송사는 주로 통신사 파견 및 왜관 수리로 인해 정지 요청이 이루어졌지만, 자연재해나 잦은 별차왜의 파견 등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 양국의 부담이 컸던 특별한 상황에서 정지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1753년과 1779년의 사례가 주목되는데, 1779년은 결정과정에서 실제 정지에 이르기까지 잦은 논의가 필요했던 이례적인 사례였다.
1779년 사례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례송사 정지 요청을 받아들일지 여부가 전례의 요건을 충족하는지였다. 대마도는 1753년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조선은 기존에 이를 전례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했다. 그러나 대마도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례송사를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정지 대상 연도(1779년 또는 1780년)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조선은 1647년과 1677년 선례를 참고해 1779년 송사를 정지하고 1780년 송사 접대에 겸대하기로 했다. 셋째, 도서 개착 문제였다. 1779년 서계에는 신도주의 도서가, 1780년 서계에는 사망한 구도주의 도서가 찍힌 황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조선은 제대로 확인을 거치지 못한 동래부사를 추고하고, 대마도와 신속하게 연례송사 정지의 일을 매듭짓기 위해 서계에 신도주의 도서를 고쳐 찍도록 하여 접대를 허락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규정을 준수하며 동래부사 등 책임자를 문책하면서도 대마도와는 무력적 충돌 없이 협의를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이 조일 교린체제를 안정시키고 17세기 말~18세기 교린체제를 ‘안정기’로 규정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779년 연례송사 정지의 배경
3. 대마도의 연례송사 정지 요청
4. 정지할 연례송사의 범위
5. 선후가 바뀐 서계의 圖書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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