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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34집 제4호
발행연도
2001.2
수록면
41 - 55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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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 이전까지의 정치변동을 국가형성의 관점에서 검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 연구들은 서구의 국민국가 건설과정을 주도한 세력이 부르조아였다는 이념형적 설명 틀을 기반으로, 개항 이후의 정치적 과제를 근대국민국가 건설로 설정하고, 이 시기의 정치변동을 보수와 개화 혹은 수구와 진보의 이분법에 입각하여 설명해왔다. 이때 전자는 구체제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후자는 부르조아적 지향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실 정치적 맥락에서 이러한 구분은 타당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개항 이후, 보수파든 개화파든 당시 지배 세력들은 어떤 형태로나마 개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현실 정치의 맥락에서 대두된 문제는 개화의 범위와 속도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누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개화를 주도할 것인가였다. 한말의 정치변동은 왕이 중심이 된 근대국가 건설노선과 관료가 중심이 된 근대국가 건설노선 간의 대립에 의해 나타났다. 두 노선의 균열과 적대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시기는 갑오ㆍ을미 시기와 대한제국기였다. 두 노선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갑오 개혁의 주도 세력은 왕을 배제한 관료주도의 근대국가를 구상했음에 반해 대한제국의 주도 세력은 관료권을 배제한 왕 중심의 근대국가를 구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야기된 치열한 권력투쟁은 왕과 관료 사이의 정치적 균열을 확대ㆍ촉진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을 유지해왔던 지배연합의 붕괴로 이어져 국가 쇠퇴를 촉진시켰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목차

논문요약
Ⅰ. 연구의 목적
Ⅱ. 기존 연구의 검토와 이론화의 문제
Ⅲ. 갑오ㆍ광무 개혁 이전까지의 상황
Ⅳ.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에서 나타난 정치적 균열 구조
Ⅴ.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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