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11집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55 - 85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먼저 중앙의 정치세력과 호남지역 사림士林의 연관관계 속에서 호남과 나주지역의 성격과 시기적 변화를 파악하는데 주목하면서 아울러 16~17세기에 걸쳐 나주지역 경현서원의 건립과 운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호남과 나주 사림들은 지역 내에서 동東ㆍ서인계西人系 사림이 함께 거주하면서 상호간에 갈등관계가 지속되었는데, 그 중심은 나주지역이었다. 처음 1584년 동인계에서 경현서원을 건립하였는데 1589년 기축옥사 己丑獄事 때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동인계에 대한 서인계의 대공세가 있었고, 이후 서인계에서 서원의 운영권을 장악하였다. 이어서 광해군대에는 북인계가 운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655년 이러한 갈등은 향전鄕戰으로 발전하였다. 이 향전은 을미옥사乙未獄事라고 일컬어졌는데, 처음 서원 원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양 세력간의 이해가 상반되는 등 서원의 운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지속 되다가 결국 비서인계에서 임명한 나주향교의 헌관을 서인계가 축출하면서 발발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도내道內에서 해결되지 않고 중앙으로 이송되어 형조의 추문을 받게 되었으며, 그 결과 양측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종결되었다.
을미옥사 이후 양 세력은 각각 분리되어 서원을 건립하였으니, 옥사가 발생한 4년 뒤인 1659년 서인계에서는 월정서원月井書院을 건립하였고 동인계의 후손들인 남인계에서도 1690년 미천서원眉泉書院을 건립하였다. 미천서원은 당시 호남유생 650인이 연명장소를 올려 허가되었고 1723년 사액되기에 이르렀다. 이 서원에 대해서는 전라도 남인계 사림들의 지속적인 원조가 이어지고, 남인의 본고장인 경상도 사림들의 원조가 있기도 하였다. 나주지방 사림에게 있어서 서원은 매우 중요한 기구였으며 중앙의 정치세력과 민감하게 작용하면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호남사림과 나주사림
3. 경현서원을 둘러싼 서원의 운영과 향전
4. 서원을 둘러싼 갈등의 지속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