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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무속학회 한국무속학 한국무속학 제20집
발행연도
2010.2
수록면
223 - 24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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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지역 공동체 의례 집단의 성격과 그 면면들을 통해 지역사회와 의례 집단과의 영향 관계를 규명하고자 동보 연구의 일환이다. 1927년에 제작된 서빙고동 부군당 중수기 현판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행적과 가계 등을 추적하여 중수 집단의 성격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지역 사회의 변화는 각 지역 공동체 의례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특히, 지역의 세력 구도의 변화는 그 지역 공동체 의례를 주도하는 세력의 향방과도 밀접히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서빙고동 부군당에 남아있는 1927년 중수기는 이러한 정황을 대연하고 있다. 존위나 구장과 같은 주요 인물들, 중수를 위해 고액을 기부한 인물들, 일본인이연서 중수에 참여한 인물 등이 보여주는 그들의 이력과 지역에서의 활동상은 지역 토착 세력의 지속적인 영향력 이외에도 당시 서빙고 지역을 거점으로 한 상업 자본기의 성장과 이들 간의 네트워크의 형성 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또한 서빙고 지역에 존속하고 있었던 부군당과 그 의례를 통해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을 것인데, 1927년에 있었던 부군당의 중수 과정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로는 첫째, 일제시대 서빙고 지역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토착 세력이 부군당 의례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으며 고액을 기부하고 구장ㆍ화원 등으로 참여하면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일제시대 서빙고 지역 부군당의 중수에는 토착 세력 이외에도 미곡상과 정미업자, 대부업자로 대변되는 사업가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었으며 외지인과 일본인도 참여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셋째, 부군당과 그 의례가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혹은 교분 있는 유력자(상인ㆍ사업가ㆍ유지들)들 간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과 상권의 확장, 철도의 개설 등이 지역 사회와 세력 구조의 변화를 가져 왔고 이는 결국, 지역 공동체 의례를 주도하는 집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제의 미신타파 정책에도 불구하고 부군당 의례와 중수기 가능했던 것은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토착민들이 윗대부터 내려오는 부군당 의례 전통을 고수하고자 했던 기본적인 욕구기 있었기 때문이며 지역민뿐만 아니라 인근의 교분 있는 유력지들 간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부군당 의례를 활용하파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1920년대 변화된 일제의 종교 정책, 즉 조선의 민간신앙이나 무속 의례 등에 대한 정책적 후퇴 내지는 묵인이 행해 졌던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일제시대 서빙고 지역의 현황과 상권의 발달
Ⅲ. 1927년 부군당 중수 집단의 성격과 의례의 의미
Ⅳ. 결론
〈참고 문헌〉
〈부록〉

참고문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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