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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영준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다문화콘텐츠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3호(통권 8호)
발행연도
2010.4
수록면
213 - 24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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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팔관회는 왕과 신하 및 백성들이 함께 천령(天靈)과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에게 제사하면서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원하는 국가행사였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제천행사가 불교의식과 합쳐지고, 국제문화를 지향하는 고려정부의 의지가 총합되어 설행되었다. 이는 국초(國初)부터 국가의 태평을 위한 목적으로 지속된 문화행사였으면서도 각국의 사신과 상인이 고려를 찾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팔관회의 설행으로 고려는 이슬람 계통의 문화를 직접 받아들여 생활문화에 적용하거나, 송(宋)과의 문물 교류를 통하여 서역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문화를 사회에 적극 활용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11세기 중반에 세워진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에서도 활용될 정도로, 고려사회 전반에 활성화되어 있었다.
당시 고려가 추진했던 문물교류는 정부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지만, 불교를 활용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자 하였던 정치적 지향성에 기인한다. 때문에 고려의 문화는 그 성격 자체가 국제적이면서도 타(他) 문화에 대해 개방된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고려 불교를 정점으로 하는 문화의 수용 양상은 타국의 장인(匠人)을 초치(招致)하여 문화단계를 높이려는 모습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인접한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문물교류를 통해서 더욱 확연해진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기록으로 본 팔관회의 설행
3. 팔관회의 사회적 성격과 국제문화교류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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