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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태헌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0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383 - 42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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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후 만주를 ‘자기 땅’처럼 생각하던 일본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선철도합동’ 방침 아래 만철의 조선철도 인수-병합을 내정했다. 그러나 열강 및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위탁경영으로 급전환되었다(1917.8). 위탁경영은 경영권과 납부금(만철→총독부) 측면에서 만철과 총독부 모두에게 불만스럽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일본의 중국지배정책에 대해 미국의 견제가 커졌고 영일동맹도 파기되었다. 일본은 영미와 대립을 피하기 위한 수세적 현상유지책을 취했다. 전후공황으로 자금난에 빠진 만철은 조선철도를 병합하여 인수액(정부 출자)에 대응하는 민간출자를 통해 증자(3억엔)하는 방식에 집착했다. 그러나 만주에서 불리해진 일본의 국제환경과 철도 경영권이 없어 ‘권위’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인식한 총독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는 육군군벌의 정치적 영향력 약화, 입헌정우회 중심의 原敬내각의 성립으로 정당세력이 확대된 당시 일본 정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齋藤 총독 부임을 계기로 조선철도 직영론을 정립한 총독부는 일본의 효과적인 만주지배를 위해서도 허구적 ‘滿鮮정치통일론’에서 벗어나야 하고 조선철도망 완성의 과제를 더 이상 만철에게 맡길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일본정부는 1925년 4월 1일부터 조선철도를 총독부 직영으로 환원하기로 결정(1924.10)했다. 식민지자본주의의 ‘개발-수탈’체제 구축 수단으로서 독자적 조선철도정책의 중요성이 일본 정계에 비로소 공유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7년에 ‘조선철도 12년계획’이 시행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본군부의 만주지배 자신감이 낳은 ‘滿鮮철도합동론’ (1905~17)
3. 吳越同舟, 만철의 불안정한 위탁경영 시작(1917~18)
4. 만철 병합안과 총독부 직영안의 대립(1919~23)
5. 일본정부의 대륙침략정책과 식민통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총독부 직영 결정(1924)
6.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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