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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在弘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9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97 - 13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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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시대 영역국가와 그 주변에 존재하였던 종족 및 지역을 해명하기 위하여 韓과 濊를 대상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삼국이 영역국가로 전환한 초기에도 그 내부에 종족 및 지역국가가 존재한 이유를 외부요인에서 찾지 않고, 종족이 처한 자연 환경을 기반으로 한 생업경제라는 내부요인에서 찾아보았다.
삼국시대 한과 예의 존재양상을 잘 보여주는 예가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新來韓穢’이다. 광개토대왕은 정복한 한강유역의 구백제민을 城 단위로 편제하였는데, 종족명을 붙인 경우는 58성 가운데 6성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한강유역의 한족과 예족이 일정 지역에서 종족성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었지만, 두 종족 간 융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예, 영동예, 영서예를 종래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은 영서예, 동쪽지역은 영동예로 파악하였지만, 『삼국지』와 낙랑 목독(木牘)에 근거하여 낭림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은 영서예, 동쪽지역은 영동예로 이해하였다. 산과 내 등 자연지형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던 예족은 수렵과 어로를 중요한 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결국 영동과 영서가 해양 어로와 수렵·하천 어로를 계기로 생업환경이 분화되면서 지역적으로 구분되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에 예족과 한족은 생업환경을 달리하면서 존재하였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생업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예족은 산과 하천을 무대로 사냥과 어로 등의 생업을 통해 생존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예족 지역에 벼농사 등 농경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한족이 들어오면서 예족과 한족은 생업환경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예족과 한족이 융합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한족과 예족은 종족적으로 구분되기보다는 점차 백제인, 고구려인으로 융화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사료로 본 韓과 濊
III. 韓과 濊의 생업경제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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