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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창수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5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345 - 377 (33page)
DOI
10.21490/jskh.2016.11.6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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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866년 조선의 대외 위기 속에서 조선 사신들의 교섭활동을 파악하고 이러한 행동이 사신과 청 관원의 교류와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1866년 7월 북경에 있던 조선 사신들은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침략소식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조선에 전달하기 위해, 기존에 인연이 있던 청 관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프랑스의 침공이 임박한 위기상황 속에서 사신으로 청을 다녀온 조선 관원은 관료와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하여 전쟁의 중재를 부탁하기도 했다. 두 사례 모두 청 禮部尙書와 접촉했는데, 예부 상서는 고위 관료이자 조선 정책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와 같은 조선 사신들의 교섭은 개인적 관계를 활용했다는 점, 역관이 아니라 사신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 기존의 교섭관행과는 차이가 있었다. 18세기 중반부터 관원이 아닌 사신의 수행관들이 청 문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19세기에 들어서면 고위관원인 사신들도 동참하면서 사신과 청 관원의 교류망이 만들어졌다. 丙寅洋擾시기 조선 사신의 비공식 교섭활동은 청 관원과의 교류망을 활용한 결과였다. 1866년 이후 조선 사신들이 자국의 대외위기에 관해 청 관원들과 논의하는 행동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후반 대외 위기가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여기에 대응하여 새로운 교섭 관행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병인양요기 사신의 교섭활동
3. 19세기 사신의 교류와 교섭양상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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