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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완규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73집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79 - 11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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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지역은 마한과 백제시대에서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종교 문화적으로 익산 미륵사는 사서에서 왕흥사로 지칭되는 사찰로서 성왕이래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백제 중흥을 이루고자 창건되었다. 특히 미륵사 창건연기에 보이듯이 미륵하생신앙을 실천하여 이곳에 용화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백제인의 염원이 담겨 있는 국찰이었다. 나아가 고대국가의 수도경영 요건인 왕궁·묘사·관방유적·왕릉 등을 건설하고 있어 백제말기 천도가 이루어졌음을 살필 수 있다. 구한말 한국사회는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매우 혼란과 갈들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에서 미륵신앙과 결부된 대표적인 신종교로서 증산교와 원불교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미륵사 창건에서 비롯된 미륵신앙 전통을 면면히 이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박중빈(少太山朴重彬, 1891~1943)이 제시한 미륵용화회상관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평등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는 점에서 영웅 중심의 미륵 세계관과는 크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익산에 전법성지인 중앙총부를 두게 된 것은 백제 미륵사와 관련된 미륵하생신앙의 법연과 맞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백제시대에는 왕권을 비롯한 최고 권력에 의해 익산에 정치적 목적을 위한 미륵사 건설이었다면, 소태산은 전법성지 익산을 천불만성의 세계적인 메카로서 익산을 선택한 것이었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왕도 익산의 역사와 문화
Ⅲ. 미륵사 창건과 왕도 익산
Ⅳ. 미륵신앙과 전법성지 익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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