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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혜영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국립경국대학교 민속학연구소 민속연구 민속연구 제34집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323 - 35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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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률사는 극장무대를 장악하고 상업적 흥행을 도모한 결사체로서 민간예인들이 주도한 연행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극장이 신설되면서 소리꾼, 기생과 더불어 남사당패와 같은 민간예인들은 극장 무대를 중심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극장이 신설되자 소리꾼, 기생과 더불어 남사당패와 같은 잡희자(雜戱者)들은 풍속개량과 문명개화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극장 무대라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 하였다. 그들의 실질적인 사회적 입지는 생계의 압박을 받으면서 신분에 귀속되어 극장의 흥행과 홍보를 전담하던 감정근로자이자 근로자에 가까웠다.
이 민간예인들의 활동은 근대 상업자본과 결부되어 대중적 흥행을 도모하는 공연예술가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초기 실내극장이었던 원각사의 공연은 관기춤과 걸립, 판소리 등으로 구성된 반면, 가설극장을 세워 지방을 순회하던 지방 협률사 공연에 무용 대신 농악의 비중이 높아졌고, 무대 공연에 걸맞는 설장구놀이라든지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들이 공연 레파토리의 일환으로 재편되었다. 여기에 농악 예인들이 가담하였는데, 이들은 지방협률사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색의초혜(色衣草鞋)’를 장려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각종 선전활동과 향토 오락 정화와 향토예술의 일환으로써 농악경연대회 주최 등이 활발해지면서, 농악의 무대화도 더욱 가속화되었다. 협률사의 지방 순회 공연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여기에 가담한 예인들이 때때로 마을에 정착하면서 지역의 농악판을 장악하기도 했으며 마을에 거주하던 재주꾼들이 협률사를 따라나서기도 했다. 창부와 기생, 농악인들이 지방을 순회하면서 각 지역에서 남사당패나 지방 협률사의 영향을 받은 무동타기라든지 박첨지놀이, 협률굿이 확산과 혼효를 거듭했다. 농악의 탈맥락화와 해체와 재구를 거친 무대화의 국면을 협률사에 가담한 농악 예인들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민간예인들의 협률사 활동과 유랑의 자취는 이른바 신식길(질)굿, 선전굿이라고 할 수 있는 협률굿과 같은 연행으로 잔존해있다. 해방 이후에도 공연이나 극장 홍보용 길놀이, 짤막한 판굿, 치배별 개인놀이, 단가나 단막극의 조합 등은 포장걸립패나 여성농악단의 공연레파토리의 성립과 연계선상에 있다.
군악의 전통이 양악으로 이행된 근대 이후 군악의 성격과 유사한 농악의 진법이라든지, 군법의 체계를 닮은 치배들의 서열과 위계 보다 개인의 연예 능력과 기량을 선보이면서 관객몰이를 위한 공연물로써 농악의 연예화가 가속화되었다. 농악인들은 대중적 취향에 부응한 상업 극장무대에 공연자로 출연했다. 이는 농악의 무대화, 연예화, 상품화가 가속화되고, 당대의 농악예인들이 극장무대를 전전하는 전통공연 예술가로서 전환되었던 국면을 보여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협률사의 출현과 민간예인의 근대적 공연예술가로서 전환
3. 근대극장의 전통공연 레파토리로서 전통연희의 무대화와 연예화
4. 민간예인의 이합집산과 유랑에 따른 연행의 잔존과 협률굿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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