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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5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79 - 229 (51page)
DOI
10.17857/hw.2019.6.5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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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를 필두로 각종 사회적 모순이 발생했다. 근대국가는 체제를 유지하되 사회의 안정을 추구할 방안으로 사회사업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사회사업은 사회적 약자 계층을 보호하면서 이들이 체제를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통제 정책으로 작용했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면에서 1920년 초부터 사회사업을 실시했다. 이 사회사업을 통해 1910년대 동안 처벌 혹은 방관의 대상이었던 불량아를 식민지 체제 내로 흡수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불량아의 범죄 문제는 1910년대부터 제기되었다. 불량아의 대다수는 생계형 범죄자였지만, 일제는 이러한 아동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보다는 행동의 결과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일제는 아동 범죄자에게 성인 범죄자와 동일한 처벌을 가했다. 불량아의 죄질이 낮은 경우에는 경찰의 선에서 정리되었다. 일제는 빈곤한 아동이 불량아로 전락하는 상황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지역사회의 유지와 민간단체의 구제사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 구제사업은 어디까지나 무고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다.
1920년대 사회사업이 시행되면서 불량아를 식민지형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일제의 감화정책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유년 수감자의 불량성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실시되었다. 다음으로 아동의 불량성이 악화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한 감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23년 「조선감화령」을 공포하고 같은 해에 영흥학교를 신설하여 불량한 행위를 하거나 불량한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아동을 수용시켰다. 조선에서 실시된 감화정책은 일본의 정책보다 수준이 낮았음은 물론이며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소극적인 행보에 그쳤다.
영흥학교에 수용된 원아는 다수가 빈곤한 조선인 아동이었으며, 이들 대다수가 불량한 행위를 하는 소년으로 간주돼 경찰의 주도로 영흥학교에 이송되었다. 초기 입원 원아는 불량아 중에서도 ‘괴수’라 칭하는 불량한 무리의 우두머리 위주로 집중 수용되었다. 영흥학교는 학과교육과 실과교육을 병행한 감화교육으로 원아의 불량성을 개전시키고 ‘선량한 국민’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퇴원아의 절반 이상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거나 재범자가 됐다. 1930년대 조선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영흥학교는 원아를 공업 노동력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했지만, 사회적 냉담한 시선으로 그 취업률은 굉장히 낮았다. 여러모로 이용 가치가 없어진 감화사업은 명목상으로만 운영되었고 영흥학교는 원아의 불량성을 개선시키는 사회적 교육기관이 아닌 불량아를 사회에서 격리수용시키는 수용소의 성격으로만 유지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미성년자의 범죄문제와 조선총독부의 대응
Ⅱ. 조선총독부의 감화원 설립과 운영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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