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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구보학회 구보학보 구보학보 제2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69 - 391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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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반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조선 농민들의 삶은 극도의 궁핍과 불안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만주를 새로운 상품시장으로 편입시키며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었으나, 식민지 농촌의 경우 여전히 쌀값 폭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에서는 전국적인 규모로 농촌진흥운동을 시행했는데, 이러한 관제프로젝트에 맞서 민족운동 세력들도 동아일보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브나로드 운동이나 조선공산당재건운동과 결부된 적색농민조합 운동을 전개했다. 농민들을 전유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에 문단에 등장한 박영준은 「모범 경작생」, 「일년」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 당대 농민소설들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였던 엘리트 지식인들의 이념적 계몽을 거치지 않고 농민들이 자생적으로 자신들의 계급적 위치를 자각하고 투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영준이 이러한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이었던 평안남도 강서군 일대의 적색농민조합운동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박영준은 강서적화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룬 후, 더 이상 농민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더불어 농민소설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만주로 이주한 뒤에는 협화회 활동을 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자신에게 문학적 영예를 가져다 준만큼 훼절의 아픔 또한 떠올리게 하는 탓에 박영준은 더 이상 농민소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새로운 농민소설의 양식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재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매우 이채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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