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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9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1 - 11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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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대구와 함흥의 전기 공영화 운동을 추진 주체를 중심으로 검토하는데 있다. 일제시기 주요 도시에서는 민간회사의 전기 독점으로 인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었으며 이는 전기 공영화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공공성에 기반한 공영화 운동은 1927년 평양 부영화가 성공되면서 각 지역에 파급되었다. 그리하여 1929년에는 부산과 대구, 1931년에는 경성과 함흥 등지에서 공영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운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협의)회의 태도이다. 지방의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서 이후 진행과정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대구는 전기 요금 인하에만 치중한 채 부협의회가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전기 공영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운동도 1929년 7월 한 달에만 집중되어 사실상 전기 공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정도이다. 반면 함흥의 경우 수 차례에 걸친 시민대회에서 조직된 기성회가 부회 선거에 공영 찬성론자 당선을 위해 힘썼고 실제로 부회는 찬성론자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부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공영 운동이 전개되었고, 부영안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부(협의)회나 부 당국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전기 공영화는 진전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제시기 지방의회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의 공론화된 의제를 현실화시켜 줄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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