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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나경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7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107 - 142 (36page)
DOI
10.37331/JKAH.2020.03.9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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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에는 新羅의 宗廟制를 크게 始祖廟祭祀, 神宮祭祀, 五廟制의 세 가지 종류로 전한다. 신라는 건국 초기 세 집단이 왕위를 교대로 차지하였고, 이 시기의 三姓 集團은 각자 始祖를 위해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赫居世는 國祖로서 인식되어 성씨에 상관없이 新王은 즉위 후에 시조묘에서 제사지냈음이 확인된다. 그러다가 마립간시기에 이르러 신라 왕위를 金氏 집단이 독점하게 되면서 炤知麻立干代에 신궁제사라는 새로운 제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신궁은 김씨 시조를 主神으로 모셔 설치한 것이며, 신궁제사는 시조묘제사를 대신하여 新王의 卽位儀禮的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시조묘제사나 신궁제사가 유지되는 한편, 중대에 이르러 왕실의 가계가 聖骨에서 武烈王系의 眞骨로 변하게 되면서 무열왕계 왕실은 기존 왕실과의 차별성을 위해 儒敎的 禮制인 오묘제에 주목하였다. 결국 문무왕대에 이르러 신라에 오묘제가 수용되었고, 오묘제의 수용은 이제 유교적 관념이 본격적으로 신라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라 중대의 왕들은 초기 오묘 구성은 太祖大王과 直系 4대조로 구성함으로써 유교적 예제인 오묘제를 통하여 왕실을 김씨 집단과 차별·분리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惠恭王代에 이르러 중대 왕실의 중시조격인 太宗大王이 毁撤될 상황이 되자, 태종대왕과 文武大王의 공덕을 인정하여 ‘世世不毁之宗’으로 삼았다. 동시에 태조대왕 대신 최초의 김씨 왕이자 庾信의 혼령을 위로한 공덕 등이 있는 미추를 始祖大王으로서 오묘에 봉안하였다. 결국 신라의 오묘제 수용은 기존의 시조묘와 신궁제사를 통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온 왕권의 신성성을 강조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오묘제를 통해 직계 조상에게 제사함으로써 왕위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보다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오묘제의 수용 배경 및 시기
Ⅲ. 오묘제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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