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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7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 - 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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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후반 신라와 일본의 외교 관계는 大宰府를 매개로 한 관인 사이의 교섭 형태를 통해 유지하고 있다. 왕권이 직접 주재하는 조정의 외교의례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방식과 달리 九州 서북단의 쓰쿠시(筑紫)에 위치한 다자이후에서 이루어지는 신라와 일본의 공식 교섭은 문서 대신에 口頭로 국가적 의사를 교환하는 동시에 신라사신이 가져온 물품은 筑紫大宰의 관여 하에 중앙에 전달하는 등 이른 시기부터 전해오는 외교형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7세기 후반 신라와 일본의 외교 교섭은 조공국과 피조공국 쌍방의 관계를 실제로 확인하는 외교의례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조공방식과는 다른 형식과 방식으로 이루어 졌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대체로 율령제 확립을 위한 내정 개혁에 매진하던 天武·持統년간 일본 조정은 신라사를 비롯한 외국사절을 다자이후에서 맞이하고 교섭하는 외교 형태로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이 율령제 완성을 통한 일원적인 외교권이 확립되지 않았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요컨대 다자이후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신라사와 筑紫大宰 사이의 외교형식을 통해 7세기 후반 신라와 일본의 관계가 상하 조공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隣國으로 交隣關係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화사상의 실현을 위한 전제로서 일본이 신라를 蕃國으로 인식해 의식상에서 상하관계의 禮를 요구하거나, 신라사신이 일본의 요구를 감수해 朝貢이라는 臣從의 禮를 취하는 등 번국으로 하위의 외교형식을 암묵적으로 감수한 것으로 이해한 기존의 선행 연구는 객관성이 결여된 일본 본위의 시각에서 비롯한 자의적·일방적인 해석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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