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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초롱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8輯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5 - 38 (34page)
DOI
10.31335/HPTS.2022.08.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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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8세기 신라-일본의 갈등이 의례의 참석여부, 절차, 용어 등 예제를 매개로 표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양국의 갈등을 예제갈등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우선 원일조하의례를 중심으로, 신라와 일본이 당 예제를 수용하여 각국의 예제를 재정비하고 의례에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반영하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의 원일조하의례는 천황제의 성립, 당의 장안성을 모방한 헤이조 쿄로의 천도와 맞물려 정비되었고, 신라 사신의 참여를 핵심 구성요소로 한 점에 주목했다. 일본은 신라로 대표되는 번국과 자국으로 구성된 천하를 천황이 지배한다는 관념을 원일조하의례로 표현하였다. 문제는 신라 역시 통일 이후 자존감이 고양되어 확장된 천하관을 가진 상태에서 일본의 이러한 의도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라는 715년 일본 원일조하의례에 의도적으로 불참함으로써 신라를 번국시하는 일본의 천하관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일본의 의례상 변화와 이에 대한 신라의 불만은 730년대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를 바탕으로 735년의 ‘왕성국’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다음으로는 왕성국 발언 후 신라 사신의 국서 지참과 예물 명칭 문제를 놓고 신라-일본이 갈등한 양상을 살펴보았다. 일본은 8세기 당 예제의 수용 이후 당빈례의 구성요소를 구비함으로써 자국을 천자국으로, 신라 및 발해를 번국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라와 일본 사이에는 당 예제 수용 이전의 전통적 외교의례가 존재했으므로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의 빈례는 교로의, 상표와 방물헌상, 황제 알현, 연회의 절차로 이루어졌는데, 이 가운에 문제가 된 것은 상표와 방물헌상의 절차였다. 신라는 국서(표문) 지참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해 전통적인 구두 외교를 지속하고, 자국의 예물을 ‘조(調)’로 지칭하지 않는 등 일본이 당 빈례의 제 요소를 갖추어 황제국을 자임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일본의 당 예제 수용과 원일조하의례(元日朝賀儀禮) 변화
Ⅲ. ‘왕성국(王城國)’ 발언 이후 국서(國書) 지참 및 예물(禮物) 지칭 문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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