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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승욱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67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127 - 16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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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 근대 초기 역사학에서 민족(民族, nation) 개념이 수용, 변용되는 과정을 량치차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구체적인 분석 과정에서는 민족 개념의 형성 과정에서 서구에서 들어온 과학 정신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목해보았다.
중국에서 민족(民族)이라는 단어는 서구 개념의 수용과 변용 과정을 통해서 자리 잡았다. 량치차오의 경우 독일 정치학자 블룬칠리(Bluntschli)의 국가론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때의 민족 개념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 권위주의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민족 개념이 외래 개념의 피동적 수용뿐만 아니라 중국 국가, 사회의 기존 질서(정치 체제와 종족 구성)를 기반으로 한 주동적 선택의 측면도 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량치차오는 청 제국을 구성했던 여러 요소, 특히 제 종족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합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 공동체인 국민(volk)으로 변화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량치차오의 이러한 기대는 곧 그의 새로운 역사학 서술의 시도로 이어졌다. 그는 “신사학”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역사학의 범주에서 중국의 민족국가로서의 진화를 학문적으로 실증해내려고 했다. 이때 그가 주로 역사학의 학문적 기반으로 삼은 것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정신이었다.
그러나 중국 민족(주의)의 통합성을 과학으로 ‘포장’하려는 그의 시도는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청 제국의 분절적 구도 자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청 제국은 인구, 문화, 지리의 제 측면에서 중국성(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핵심적 요소가 중심성(centrality)을 형성한 누층적 구조를 균질하게 만드는 것은 그 민족국가로의 이행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과학 정신을 기반으로 민족(주의)를 설명하려는 시도 속에서, 제국을 구성했던 제 종족 간의 정치적·사회적 합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고 중국 민족(주의)의 형성을 이끄는 주류 세력으로서 한족(漢族)의 자기 확신이 일방적으로 부각된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 결과 제국 시기의 국가 구조는 그 분절적 구도를 해체하지 않은 채 근대 민족국가(nation -state) 속에 그대로 내장되었다. 또한 이는 다민족 구성을 전제로 한 국가 이념에 대한 내부적 합의의 필요성을 오늘날까지 과제로 남기고 있다.

목차

I . 머리말
II . 민족 개념 수용상의 특성
III . 진화론과 지리결정론
IV . 과학에서 의지력으로
V .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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