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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0집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247 - 285 (39page)
DOI
10.18496/kjhr.2020.11.7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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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말기부터 마쓰우라(松浦)는 해적과 밀접하게 관련된 지역이었다. 13세기 마쓰우라가 왜구의 근거지였고, 이곳의 약소무사와 주민들이 왜구이며 약탈자로 활동하였다. 14세기 남북조내란기에 접어들면서 마쓰우라라는 일족 이름을 함께 사용하여 일족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1350년 간노죠란(觀應擾亂)의 대 혼란에서 마쓰우라의 약소무사들은 정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활동하였다. 고려는 이 시기에 창궐하는 왜구를 “경인년(1350) 이후의 왜구”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편 1371년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이 규슈로 내려왔을 때, 마쓰우라 일족의 약소무사들이 대해적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한편 마쓰우라의 약소무사는 해적과 약탈을 금지하며 어장의 경계를 구분하는 ‘계약장(契約狀)’과 ‘압서장(押書狀)’을 체결하였다. 이들은 ‘계약장’으로 왜구 출몰을 자제시켰고, ‘압서장(押書狀)’으로 왜구들의 안정적인 정착에 유도하였다. 이로서 마쓰우라의 약소무사와 주민들이 고려 왜구의 창궐, 혹은 소멸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쓰우라 지역은 왜구 근거지이며 마쓰우라토는 고려 왜구의 주체 세력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마쓰우라군(松浦郡)과 마쓰우라토(松浦黨)의 구성
3. 마쓰우라토의 고려 약탈과 왜구의 출현
4. 마쓰우라(松浦) 일족의 유동성과 왜구의 근거지
5. 시모마쓰우라(下松浦)의 해적 금지와 어장 분배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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