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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규수 (一橋大學)
저널정보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시민인문학 제4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9 - 4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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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조선에서 발행된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조선인은 후세 다쓰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았다. 그의 조선 방문을 전후로 보도된 기사를 중심으로 후세와 조선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당시 그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인식과 평가에 주목했다. 후세 다쓰지는 일본의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변호사 개업 후 인도주의에 의거하여 사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일본 내에서는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투신했고, 국외에서는 조선, 타이완 등 식민지에서의 민족 및 민중의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사건에 관여했다. 특히 후세는 다양한 형태로 조선과 관계를 맺었다. 후세는 1923년 북성회(北星會)와 동아일보사가 기획한‘하기순회강연단’을 계기로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의열단 사건의 변호를 비롯해 조선공산당 등 치안유지법 관련 변호단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조사와 항의 활동에 나섰고, 각 언론사에 ‘학살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양심적 법조인으로서 활동했다. 후세는 일생동안 자유⋅평등⋅민권이라는 이념을 실천한 변호사였다. 그의묘비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라는 좌우명을 실천한 후세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선인 운동가들은 후세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일본인으로 평가하고 존경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후세와 조선인들과의 관계는 한일 연대투쟁의 본보기로 간주되며, 양국에서 후세는 식민지 민중의 ‘벗’이자 ‘동지’로서 기억되고 있다.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변호활동과 식민지 민중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하면 후세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 조선인들의 평가대로 후세는 ‘일본무산운동의 맹장’이었다. 후세와 조선인의 관계는 한일연대투쟁의 거울같았다. 후세는식민지 민중의 ‘벗’으로서, 때로는 ‘동지’로서 영원히 각인되었다. 후세는 식민지민중을 발견했고, 조선인들은 후세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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