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목적은 일반적 법리학으로서의 오스틴의 명령설을 기존에 이해되어 온 외적 관점을 전제로 하는 실증주의의 지평이 아닌, 내적 관점을 전제로 한 해석주의의 관점에서 보여주려는데 있다. 법실증주의와 대립해 온 자연법론의 오랜 역사에서 자연법론은 그 의미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다양해서 서로 완전히 대립되는 견해도 동일한 명칭 하에 포섭되기도 했다. 반면 법실증주의는 이론 구성에 있어서 가치중립성에 기초한 객관화 요구라는 비교적 간단명료하고 통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요구 하에 실정법 개념을 각각 명령과 규칙 관념을 기반으로 하여 통일적으로 정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오스틴은 법실증주의의 대표적 교의인 가치 중립성과 사실/가치판단의 분리를 기초로 법의 본질은 명령이라는 견해를 주창한 19세기의 대표적인 법철학자이자 법이론가로서, 그의 법명령설은 그가 지녔던 보수주의라는 정치적 스탠스와 규범과학 일반을 근거짓는 근거학으로서 규칙 공리주의를 주장했던 그의 사유지평과 분리되어서 이해될 수 없다. 그런데 하트는 오스틴의 법명령설을 기본적으로 물리적 강제력의 경험에서 명령으로서의 실정법 관념을 연역해 내는 이론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오스틴이 본래 구상했던 명령으로서의 법 개념의 한 측면만을 반영하고 있어 오해의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스틴의 본래적 사유구도 안에서 오스틴이 제시한 명령으로서의 법관념이 복원될 필요가 있다. 그의 사유구도 안에서 명령의 관념은 외적인 관점이 아닌 내적인 관점에서, 즉 존재하는 정치적 힘에 대한 복종과 권위에의 의존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실정법은 국민과 주권자 사이에 존재하는 권위적인 의존관계를 표시하고 있으며, 바로 그 권위를 통한 의존관계를 통해 주권자와 국민은 내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법의 본질을 주권자가 내리는 명령이라고 한다면, 그 명령이 갖는 규범성의 근원은 주권자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니라 명령규범을 내리는 주권자가 명령규범을 받는 인민들에 대해 갖는 배타적인 정치적 권위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스틴은 한발 더 나아가 실정법 관념을 포함하는 명령규범의 당위성의 원천을 신(The Deity)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에서 찾는다. 즉 오스틴에게 있어서 절대적 당위로서의 순수한 명령의 관념은 한낯 인간 무리가 동료 인간 무리에게 부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명령 관념은 그 자체로서 인간보다 형이상학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인 신의 관념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스틴의 초월적 형이상학의 사유 구도 안에서 신이 내리는 명령은 그 본질상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언어로 계시된 명시적인 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채 내려진 묵시적인 명령이다. 명시적인 명령은 그 신적인 성질을 통해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한, 실행되기만 할 뿐 판단될 필요가 없는 반면, 묵시적인 명령은 수령자(受領者)의 사고과정을 통해 해명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공리주의가 등장한다. 즉 공리주의는 그 자체로 명령의 근거와 이유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형이상학적, 초월적 권위자인 신이 정내리는 암묵적인 명령의 합리적 판단 근거로서 작동한다. 이렇게 초월적 권위의 담지자를 전제로 하는 명시적/묵시적 명령 관념은 정치적 권위의 담지자인 주권자가 내리는 명령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스틴의 법명령설은 강제성의 경험과 결합된 외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리주의와 결합된 내적인 의미에서, 특히 명시적 명령과 묵시적 명령의 이분법을 중심으로 하는 실정법의 본질에 관한 일반 관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Der Zweck vorliegender Arbeit besteht darin, die Command-Theorie von John Austin, die als allgemeines Modell vom positiven Recht gilt, unter meinem eigenen theoretischen Gesichtspunkt des Hermeneutismus rekonstruktiv zu zeigen. Während die Naturrechtlehren wegen ihren breiten Sinnspektrum Schwierkeit und Vagheit und manchmal auch Wiederspruch zum Verstehen erfahren, ist der Rechtspositivismus von der Theoriegeschichte gesehen relativ leicht in Klarkeit erreicht: Weil seine zwei Grundpostulate zum Wertneutralität und Fakt-Wert Trennung in ihrem eigenen Sinne einfach sind. John Austin, der Pioneer und Gründer der positivistischen allgemeien Jurisprundez im 19 Jahrhundert, ist ohne sein politischer Konservatismus und sein Regelutilitarismus nicht vollkommen gengend zu verstehen. Die Konzeption des positiven Rechts als Befehl lässt sich hier nicht in ihrem ueren Sinne, also aufgrund der Erfahrung der Zwangskraft verstehen, sondern in ihrem inneren Sinne, nämlich im Sinne der inneren Abhängigkeit zwischen Untertannen und sogenannte „superior“, sei es methaphysich („Gott“) oder politisch („politischer Souvern“). Der Regelutilitarismus ist nach Austins Ansicht per se zwar nicht die Quelle solcher Befehln, aber Index zum solchen Befehl des metaphysichen oder politischen Superiors. Nach dieser Denklinie hat das positive Recht in sich notwendig doppelte Struktur(oder es besteht aus zwei Teilen): Einerseits der Teil des explikativen Befehls, der im klaren Wortlaut zum Ausdruck kommt, andererseits der des impliktaiven Befehls, der zum Gegenstand des utilitaristischen Kalküls wird. Diese Teilung führt von dem inneren Gesichtpunkt des Gehorsamers aus genau zur Trennung zwischen zwei geisten Bereichen: Und zwar einerseits der, wo ohne Denken nur Folgen des Wortlauts des Befehls des superiors in Betracht kommt, und andereseits der, wo zum Schluss seines impliktiaven Befehls das positive Denken der Adressaten in Anspruch nim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