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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흥남 (호남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52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76 - 95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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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유역은 지리적 여건상 영산강유역과는 다른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석실묘에 있어서도 영산강유역에 비 해 등장 시기가 늦는 것으로 보이며 초기에 등장하는 석실묘의 경우 비슷한 시기의 영산강유역이나 백제 중앙과는 다소 차이가 확인된다. 탐진강유역의 횡혈식석실묘는 현실의 세장도에 따라 크게 3개의 형식으로 분류되는데 방형에 가까운 Ⅰ식은 6세 기 중엽~7세기 중엽, 장방형에 가까운Ⅱ식은 6세기 후엽~7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며, 세장방형에 가까운 Ⅲ식은 통 일신라와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횡혈식석실묘는 Ⅰ식인데 방형에 가까운 평면형태와 더불어 입지에 있어서도 평지 에 가깝고 석실이 지하보다는 지상에 가까운 위치에 시설된다. 또한 유물에 있어서도 초기 횡혈식석실묘에서 출토 되는 유물 일부에서 영상간유역의 제작기법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탐진강유역의 석실묘는 영산 강식석실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으로는 6세기 중엽경 백제의 본격적인 영산강유역 진 출과 관련하여 영산강유역 일부 세력이 탐진강유역으로 이주해 왔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초기의 석실 묘군이 기존의 고분군과 구분되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이주 세력은 기존 세력과 구분되는 지역에 정착하 였을 것으로 보인다. 탐진강유역의 횡혈Ⅱ식은 백제식석실로 6세기 후엽경 도입되어 Ⅰ식과 함께 7세기 중엽까지 공존한다. Ⅲ식은 Ⅱ 식이 퇴화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 횡구식석실묘는 6세기 후엽경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닥처리 방식에 따라 3개의 형식으로 구분 가능 하다.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볼 때 횡구Ⅰ식은 백제 사비기, 횡구Ⅱ식은 통일신라, 횡구Ⅲ식은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변화 양상은 영산강유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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