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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낙중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73권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102 - 134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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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전라북도 서부 해안과 평야지대에서 횡혈식석실분이 등장한 시점부터 사비기에 능산리 유형의 전형적인 백제 석실이 확산되기까지 주요 지역별로 석실의 수용 양상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석실 조영과 백제와의 관계, 지역사회의 구조를 추론해 보았다. 금강하류 남안 및 만경강유역권에서는 한성기 말에 해상교통과 관련된 해안과 금강 하류에서 먼저 횡혈식석실묘가 등장하였다. 웅진 천도 후 금강수로 이용과 관련하여 금강 남안 일대에 집중적으로 조영되었으며, 내륙으로 일부 확산되었으나 이곳의 석실분에서는 분구묘 전통이 일부 남았다. 6세기 중후반의 정황은 명확하지 않으나 7세기 이후 미륵산 일대를 중심으로 무왕의 익산 개발 과정에서 최고 위계의 석실분군이 나타났다. 금강 하류 남안과 금마 이동의 내륙에는 최고 위계의 석실은 소수 개별적으로 축조되고 군집분의 석실은 등급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정읍 등 중방성 권역에서도 웅진기 후반에 횡혈식석실분이 등장하지만 군집분이 조성되는 것은 웅진기 말이나 사비기 초다. 사비기에 들어와 전형적인 능산리식 석실이 가장 밀집한 중심지로 부상하여 중방 고사성의 위상을 잘 보여주며, 고분군의 규모, 석실의 형식 등으로 보아 중방성 내에서도 지역마다 위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고창 지역은 영산강유역권의 묘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데, 한성기 말에 분구묘에 횡혈식석실이 도입되며 고총을 웅진기 전반까지 유지하였으나 사비기에 들어와서는 고창 예지리 고분 등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능산리식 석실이 군집한 모습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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