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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환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日本學硏究 日本學硏究 제65권
발행연도
2022.1
수록면
67 - 97 (31page)
DOI
http://dx.doi.org/10.18841/2022.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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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피폭국이면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국 에너지정책을 수용한 전후 일본의 선택은, 결국 3・11을 계기로 50여 년 만에 히로시마(広島)–나가사키(長崎) –비키니섬–후쿠시마를 잇는 피폭의 경험을 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일본에게 패전 이후 선택한 대미종속적 협조외교 하에서의 고도경제성장 정책에 대한 재평가 및 근대국가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함께 던지는 사건이 되었다. 일본이 원자력 발전에 동참한 것은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발생한 핵전쟁의 공포를 평화라는 명분으로 치환・은폐하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의 아시아 반공파트너가 되었던 일본은, 전후배상을 통해 동남아 경제시장에 진출하게 되었고, 여기서 TVA방식과 같은 댐 건설 플랜트가 층위적 연쇄성을 갖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수출되었다. 이는 냉전시대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적 우위를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과학기술・인류문명의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당시에는 압도적인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변형하는 것이 ‘산업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거대한 댐의 위용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근대화’와 ‘발전’의 표상(表象)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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