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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인규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선학회 禪學(선학) 禪學(선학) 제61호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63 - 8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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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나옹의 탄생과 장육사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나옹의 성씨는 아씨(牙 氏)라고 알려져 있으나 중국 등에 존재하고 있어서 고려말 이전에 영덕에 정착한 귀화성인 듯하다. 장육사 관련 기문이 20편 이상이 되지만 나옹이 장육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은 「장육사흥원루중수기(莊陸寺興遠樓重修記)」(1937년 작)에서 찾아지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 장육사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의 불상은 인근 영덕의위장사에서 소장된 것을 이전 봉안된 것이다. 필자는 불상 불복장 명문에 보이는 승려가운데 각홍(覺洪)과 각청(覺淸), 각환(覺還), 신암(信庵, 信?) 등은 나옹의 제자였다고 비정하였다. 특히 각청은 도은 이숭인이 지은 「여흥군 신륵사대장각기」에 영해(寧海)에서 시주하였는데 닥나무를 원료하여 종이를 만드는데 참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나옹의 문도들이 나옹을 추념하기 위해 조성한 위장사의 건칠 불상을 장육사에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추정된다. 장육사는 조선 후기에 유자들에 의하여 장육사(藏六寺)라고도 불리며, 조선후기 해담(海炎)과 극순(克順) 등의 승려들이 활동하며 영덕의 불교를 대표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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