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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숭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22권 제2호
발행연도
2023.9
수록면
69 - 98 (30page)
DOI
10.35161/rkapt.2023.09.22.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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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패전 직후, 일본의 중심인물이었던 요시다 시게루의 인식 논리를 분석한 것이다. 첫째, 190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한 요시다는 중국과 유럽에서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정세를 잘 인지했다. 당시의 강대국 간의 협조 관계에는 제국주의적 성향이 수반되었는데, 요시다 역시 영미에 보조를 맞춘 제국적 국제주의를 지향했다. 둘째, 메이지 시기에 이미 일본에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주장한 요시다는 1946년 일본국 헌법 제정 이후에도 천황 중심적 국체를 불변한 것으로 인식했다. 요시다가 의식한 천황과 일본 국민의 군신일가(君臣一家) 관계는 헌법을 통한 민주주의와의 융합이 가능한 것이었다. 셋째, 6.25전쟁 발발로 요시다는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적 안보 구상을 고안했다. 군사력을 추구할 수 없는 일본의 한계로 요시다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비군사 지역으로 설정함으로써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검토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방어적 현실주의자였다. 넷째,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요시다는 한국의 독립 관련 문구를 평화조약에 명시하려고 했다. 이는 1910년 한국병합조약으로 한국이 일본에 편입되었다는 조약의 법적 유효성을 인지한 것이며, 일본의 주권 회복을 위한 평화조약에서 한국 분리를 인정하는 법적 논리를 의미했다. 제국 일본은 해체했으나, 요시다는 일관되게 과거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를 유지했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제국적 국제주의자: 전전-전시와 영미 인식
Ⅲ. 국체적 민주주의자: 전후 헌법과 천황 인식
Ⅳ. 한국 인식: 안보와 주권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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