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2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273 - 312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830년대에 이루어진 일본 최후의 견당사 파견과 관련하여 신라조정과 일본조정이 어떤 교섭을 하였는지, 그리고 장보고 세력이 일본 견당사의 왕래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를 살핀 것이다.
일본조정은 견당사를 파견하면서 신라에 표착할 경우에 대비하여 836년에 紀三津을 신라에 파견하여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신라 흥덕왕 조정의 집사성 시중 金明은 紀三津이 제출한 太政官牒의 내용과 紀三津이 제출한 “狀”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紀三津을 돌려보내면서 執事省牒을 함께 보냈다. 執事省牒에서는 紀三津이 신라조정에 아부하는 서장을 따로 제출하였음을 밝히면서 일본조정에 대해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을 것을 제의하는 한편, 海上 勢力의 단속을 요구하여 장보고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신라조정의 협조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라에서 민애왕(김명)과 장보고 세력이 군사적으로 대립하여 항로의 위험성이 커지자, 838년 제3차 도해를 앞두고 遣唐副使인 小野篁가 渡唐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견당사는 在日 장보고 세력을 통역과 선원 등으로 고용하여 당으로 갔고, 당에서 귀국할 때는 在唐 장보고 세력의 도움을 얻어 배를 마련하고 선원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신라에서 장보고 세력의 승리를 확인한 후에야 신라 연안을 통과하는 항로를 이용하여 귀국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紀三津의 신라파견
Ⅲ. 遣新羅使 紀三津에 대한 신라조정의 대응
Ⅳ. 執事省牒에서 신라가 말하고자 한 것
Ⅴ. 장보고 선단과 遣唐副使 小野篁
Ⅵ. 小野篁의 渡唐 거부사건과 장보고 세력
Ⅶ.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911-01562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