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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인욱 (고려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211 - 24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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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金 정벌 이후 요동지역은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은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동지역에 자립했던 契丹遺種 · 浦鮮萬奴 · 몽골 등의 다양한 세력의 등장은 고려에 많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나 금이 포선만노와 거란유종을 대적하기 위해 고려에 군사 연합을 제안하는 상황은 고려의 요동정세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다. 금 중심의 국제질서가 무너졌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몽골이 평정하기까지는 ‘절대 강자’가 존재하던 시기에서 서로 힘의 우열을 확인할 수 없는 비슷한 힘을 가진 세력끼리 서로 눈치를 보며 자존을 도모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1218년 강동성 전투 이후 고려와 대면한 몽골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지배질서인 ‘솔선귀부’에 의한 위차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다스리려는 위계지배질서를 고려와 동진에 적용하고자 했다. ‘몽골-동진-고려’ 순으로 위차를 정하고 고려에 복속을 강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의도는 동진이 이탈하면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몽골은 동진이 이탈한 1231년 이후에는 ‘몽골-고려-동진’ 순으로 위차를 재조정해 적용하려 하기도 했다. 1231년 이후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강동성 전투 이후의 관계와는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 동진이 몽골의 위계질서를 거부하면서 몽골이 고려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고려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했다. 표면적으로 복속국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국가의 존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몽골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고려가 몽골과의 관계의 안정을 통해서만 자존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금 또는 동진과의 연합을 통해 몽골을 견제하고자 했으며, 이들이 쇠퇴한 후에는 금의 후예인 女眞이나, 漢兒 또는 回回 등의 세력과도 연계하여 몽골을 견제할 세력을 구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몽골의 위계에 의한 지배 질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다. 고려는 합의에 의해 관계를 맺었던 거란이나 금과의 기존의 질서 체계로 몽골 관계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몽골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태도였다. 즉 초기 교섭에서 양국의 충돌은 몽골이 적용하고자 한 위계 지배질서를 고려가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형식적 복속만을 원하는 고려와의 입장 차이로 인해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몽골의 興起와 金 중심 질서의 終焉
3. 몽골의 위계질서 시도와 낯선 현실에 처한 고려
4. 몽골의 위계 재조정과 고려의 이해 부족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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