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은영 (전남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4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185 - 220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본의 견당사 파견은 631년의 이누카미노 미타스키(犬上御田鍬)의 파견에서 894년에 폐지될 때까지 약 260여 년 간 이어졌다. 특히 ‘大宝의 견당사’는 약 260여 년의 역사 중 가장 큰 劃期라고 할 수 있다. 항로로는 본격적으로 南路를 사용하였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당 측에 알렸으며, 백강전투 전후처리를 완결하고 唐日사이의 교류원칙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륙 간의 통교에 오랫동안 한반도를 경유하는 北路를 이용하였다. 그런데 620년대가 되면 일본과 당 사이의 항로로서 한반도를 경유하는 항로를 북로라고 통칭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한다. 즉 북로라 하더라도 백제가 대륙 간 교류에 사용하는 百濟路와 신라가 사용하는 新羅路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다고 할 것이다. 623년 惠日의 귀환은 이전과는 다른 신라로를 통한 것이었다.
7세기 전반, 일본의 견수사·견당사 파견 항로는 왕복 모두 百濟路를 이용한 경우가 많았으나 620년 이후부터 갈 때는 백제로를 이용하지만, 돌아올 때는 신라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는 7세기 당을 둘러싼 동아시아 제국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은 653년(제2차)과 659년(제4차)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시도하는데 이 때 일본이 취했던 항로는 백제가 웅진시대 이래 남조와 통교하는데 이용하던 斜斷航路이다. 669년의 제7차 견당사 파견 이후, 약 33여 년간 일본은 견당사 파견을 중지한다. 그렇다고 당에 이르는 길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항로 확보를 위한 탐색은 탐라와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제4차 견당부사 津守連吉祥일행과 함께 탐라 왕자 아파기가 일본에 간 것을 계기로 693년까지 탐라로부터 12차례, 일본으로부터 2차례의 사신파견이 있었다. 특히 천무조에 이루어진 견탐라사의 파견은 일본의 새로운 항로 탐색과 관련이 있고, 이는 신라의 협조 내지는 의도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율령국가를 만든 일본은 702년에 ‘백제로’를 변형한 ‘남로’를 통해 ‘대보의 견당사’(제8차견당사)를 파견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7세기 견수사·견당사 파견 사례와 항로
Ⅲ. 동중국해의 海況과 百濟路
Ⅳ. 7세기 후반 일본과 탐라의 관계
Ⅴ.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911-000333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