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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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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2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29 - 15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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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충청남도 예산군 향천사 극락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제작한 조각승에 관한 연구이다. 이 목조불상은 2016년 11월 4일에 사찰의 의뢰로 아미타삼존불의 얼굴과 몸에 생긴 균열의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본존 바닥면에 적힌 묵서(墨書)를 확인하였다. 조성묵서에 의하면 1659년 4월에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제작하였는데, 봉안 지역과 사찰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불상 제작에는 화원 신원(信元), 운혜(雲惠), 심일(心一), 운익(雲益), 행경(幸瓊), 상전(尙全), 설화(雪和)가 참여하여 음력 3월 3일에 시작하여 음력 4월 20일에 완성되어 대략 한 달 보름이 소요되었다. 조선후기 전각에 봉안되는 불상의 제작 기간은 만드는 크기와 수량 등이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100㎝ 정도의 중형 삼존불을 한 달 보름 만에 만들었다는 기록은 조선후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단서이다. 이 불상에 수화승으로 참여한 신원은 1625년에 죽창(竹猖)과 경기 안양 삼막사종을 조성한 후, 주도적으로 1635년에 전북 남원 대복사 범종과 1636년 부여 무량사 범종을 주성한 스님이다. 그리고 신원은 1649년에 조각승 희장과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과 1650년에 전북 진안 금당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조성에 보조화승으로 참여한 후, 1658년에 예산 향천사 불상을 수화승으로 제작하였다. 신원은 1670년에 공주 마곡사 이층대장전 단청에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마곡사 단청기에 “산인(山人) 신원”으로 언급되어 공주 태화산에 거주한 스님임을 알 수 있다. 부화승으로 참여한 운혜는 1649년에 영철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황해 배천 강서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현재 서울 화계사 봉안)을, 1650년에 수화승으로 전남 해남 서동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세불좌상을, 1650년대 운익(雲益), 운일(雲日) 등과 번갈아 가며 공주 마곡사 주지를 맡았으다. 그후 운혜는 수화승으로 1661년에 전남 장성 백양사 약사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아미타불만 제주 월계사 봉안), 1665년에 전남 곡성 도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을, 1667년에 전남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을, 1672년에 전남 순천 동화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을, 1675년에 고흥 능가사 불상을 제작하였다. 이후 운혜는 1678년에 영철 등과 전남 순천 송광사 사적비 건립에 후원하였다. 스님이 만든 마지막 기년명 불상은 1680년에 도림사 극락전에 조성한 협시보살좌상이다. 운혜는 1654년에 마곡사에 조성된 범종 명문에 산인(山人)으로 언급되어 공주 태화산(泰華山)에 거주한 스님이고, 1675년에 고흥 능가사 불상을 제작할 때, 대선사(大禪師)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 향천사 불상에 수화승으로 적힌 신원은 범종을 주도적으로 제작한 적은 있지만, 불상 제작에 보조화승으로 참여한 기록 밖에 남아있지 않은 반면, 운혜는 9건 60여 점의 기년명 불상이 조사되었고, 이 불상들과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례,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착의법 등을 비교한 결과, 향천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실재적으로 조각승 운혜가 주도적으로 제작한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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