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창미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9號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303 - 331 (29page)
DOI
10.14769/jkaahe.2020.02.39.30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한국과 중국이 각각 1940년대 후반 국가를 성립한 후, 냉전시기 단절되었던 외교가 1992년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시기를 전후하여 전개된 한국, 중국, 대만의 현대미술교류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지금까지 한중수교기 정치, 경제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반면, 현대미술 교류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편이다.
1992년 8월24일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다. 1949년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민주주의 국가인 중화민국(이하 대만)으로 양분된 후, 한국은 동일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대만과 1948년부터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왔으나 1992년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했다. 이같은 변화는 1988년부터 노태우 정부가 추진해 온 북방외교정책의 마무리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중국은 제2차세계대전 종식이후 형성된 냉전시대의 흐름에서 1970년대 초부터 탈피하고자 시도했다. 일명 ‘핑퐁외교’로 일컫는 스포츠를 통한 서방세계와의 교류 시도는 냉전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마침내 1972년 2월 21일 닉슨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함으로써 미중관계는 점차 호전되었고 1972년 일본, 1979년 미국과 국교를 맺었다.
1980년대 세계화를 지향하던 한국은 대만과 교류하며 주로 중국 전통 서화 작품 전시를 개최했으며 1980년 후반에 이르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대만의 전통 수묵화나 서예가 아닌 서양화 작품을 선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자 노력한 한국은 정치와 경제방면에서의 교류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문화예술교류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미술계와의 교류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일본 등을 통한 민간 차원에서부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내에서 전개된 중국미술 전시는 리커란, 치바이스, 우창수어 등 중국의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가들의 전시와 중국의 고대 유물, 명청시대 회화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 중국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으며 이 또한 민간차원의 교류에서 전개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20세기 후반 한국 · 중국 · 대만 간의 급속한 정치적 변화 기류하에서 예술 교류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한국과 중국, 한국과 대만이 서로 상대국의 현대미술을 바라 본 관점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 같은 논의는 한중수교 27년을 넘어서는 오늘 날,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이 가져다주는 사회 전반에 대한 시각과 영향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시대적 배경
Ⅲ. 한국에서의 중화권 미술 전시
Ⅳ. 중국에 소개된 한국미술 경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4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374-000346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