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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용철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학연구 인문학연구 제63권 제1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5 - 2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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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029년에 거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대연림이 세운 국가의 명칭인 ‘興遼’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했다. 대연림이 왜 ‘요를 일으키다’로 해석될 수 있는 興遼를 국호로 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학계에서 오랫동안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다. 거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놓고, 거란의 국호인 요를 쓰면서 요를 일으키겠다는 모순적인 모습이 드러났다고 연구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추론들이 제기되었지만, 이러한 추론들 중에서는 상황을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논리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興遼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거란의 국호 변경 상황 그리고 대연림의 반란이 일어난 1029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하여 興遼의 의미를 다르게 분석했다. 거란은 大契丹과 大遼라는 국호를 시기에 따라 바꾸면서 사용하였고, 한자 국호인 大遼는 주로 한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통용되었다. 특히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켰던 1029년은 오로지 大契丹만이 거란의 공식 국호로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대연림이 세운 국가인 興遼라는 국호에서 ‘遼’는 거란의 한자 국호가 아니라 대연림이 근거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기록인 고려사 에서도 ‘遼’를 거란의 한자 국호로 사용하지 않은 사례가 興遼國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고려와 거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고려의 영덕진에서 거란의 내원성에 보낸 첩문에는 ‘平遼’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興遼國을 평정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만약 거란의 한자 국호인 遼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平遼’ 대신에 얼마든지 다른 표기를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가 첩문을 거란의 내원성에 보낸 1035년 당시에도 거란의 공식 국호는 ‘大契丹’이었기 때문에 ‘平遼’ 역시 ‘요동(혹은 요양)을 평정’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興遼國의 ‘遼’를 거란의 한자 국호가 아닌 요동(요양)으로 해석해야 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 증거로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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