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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나영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68輯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139 - 171 (33page)
DOI
10.37981/hjhrisu.2023.12.6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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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려와 거란이 일시적으로 단교했다가 외교를 회복했던 1030년대 양국 갈등의 배경과 그 경과를 검토한 글이다. 여기에는 고려와 거란의 대내외적인 상황이 영향을 주었는데, 본 논문에서는 국경 지역의 혼란과 거란 성종의 죽음을 갈등의 주요 배경으로 논의하였다. 거란의 통치가 이완되면서 동경을 중심으로 대연림 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거란에서 고려로 내투가 계속되며 국경 지역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보주를 점령하고 고려의 사신을 억류하며 고려를 견제했던 성종이 죽고 정변이 발생해 내부가 혼란해지자, 고려는 그동안 공론화하지 않았던 압록강 동쪽 지역 반환과 억류된 사신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특히 이때는 고려에서도 현종의 죽음과 맞물려 거란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표출되었다.
양국이 사행을 중단하고 대립 국면에 접어든 후, 고려는 장성을 축조하며 서북 변경을 강화하였다. 거란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정종이 즉위하고 흥종이 친정을 시작한 후 고려에 교섭을 시도하였는데, 이후에도 양국 간 갈등은 이어졌다. 고려는 장성을 연장했고 거란은 국경 안정과 고려 견제를 목적으로 보주도통군사를 설치하며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에 고려는 송에 사절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배가 난파되면서 교섭은 행해지지 못하였다. 이렇게 양국은 대립을 이어가다가 거란이 다시 고려에 관계회복을 요구하고 고려가 사절을 파견하면서 외교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후 고려는 이 시기 외교적 경험을 참고하여 갈등 상황에서도 교섭을 지속하며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우선시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1030년대 양국 간 갈등과 외교 재개는 향후 대거란 외교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양국 갈등의 배경
3. 양국 관계의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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