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근자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79호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121 - 158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발원문(1748년) 2점과 중수 기록 2점(1885년)을 분석한 것으로, 그동안 학계에 간략하게만 소개된 복장 기록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48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7월에 완료한 존상으로, 왕실과 관련이 깊은 조각승 印性이 보조 장인 14명과 함께 조성한 것이다. 원 봉안처는 강원도 平康 寶月寺이며, 1748년 조성 당시에는 석가여래ㆍ약사여래ㆍ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석가여래삼불상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세 불상 중 석가여래상은 서울 봉국사에, 약사여래상은 고성 화암사에, 아미타여래상은 백담사에 분산되어 있다. <조성발원문 1> 내용 가운데 무려 5명의 승려가 誦呪로서 참여한 것은 호암 체정의 영가 천도를 위한 목적과 시주자였던 和平翁主가 불상이 완성되기 직전인 6월 24일에 사망해 그녀의 영가천도를 겸한 것으로 해석했다. <조성발원문 2>의 내용 중 승려 靈谷 永愚가 병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라니를 필사했고, 大隨求陀羅尼를 인경해 납입했다는 사실은 봉국사 목조석가여래좌상에서 수습된 복장 다라니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동안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중수기록 1>은 고성 화암사의 승려 春潭 法咸이 폐허로 변한 평강 보월사에서 1882년에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을 화암사로 옮겨와 1885년에 개금ㆍ중수해 봉안한 사실을 알려 주었고,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화암사로부터 이안되었음을 확인케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발원문과 중수 원문의 분석은 조선시대 불상이 원 봉안처에서 여러 사찰로 분산된 이동 경로를 고찰하는데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