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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옥 (김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52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87 - 11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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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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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곡집』에 수록되어 있는 정제두의 편지글을 분석하여 그의 교유 관계와 학술 교유의 내용에 대해서 검토한 글이다. 본고에서는 정제두가 1667년부터 1732년까지 약 66년간 58명 이상의 사람에게 보낸 267건의 편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정제두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론화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후반까지 계속해서 서인-노론계와 10%대의 교유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당색은 다르지만 민진주·서한주·이희조와 같이 인척관계이거나 이징명·정찬휘·김간과 같이 학맥으로 연결되는 특수 관계에 속한 인물들과 교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제두와 교유한 서인-노론계는 송시열·서한주·민정중·김수항·민유중·민진주·김간·이징명·정찬휘·이희조·민진원 11명이다. 이들은 송시열의 문인이거나 종유한 인물로 송시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제두와 이들의 관계는 크게는 학문적 정치적 동질성을 지닌 서인이라는 집단으로 볼 수 있으며, 작게는 송시열을 동일 스승으로 하는 일종의 학맥으로 볼 수 있다.
정제두는 이징명과의 관계 속에서 초기 학문 방법을 수정하였고, 김간·정찬휘와의 관계 속에서 양명학 논변을 진행하였다. 정제두와 김간·정찬휘의 양명학 논변은 그동안 정제두를 중심으로 한 양명학 논변이 박세채 문하 혹은 소론 내부의 문제로 연구된 것에서 벗어나, 노소분기 이후 서인-노론계에서 정제두를 양명학자로 비판한 사례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정제두와 서인-노론계 인물 간에는 자운서원 묘정비 건립 문제, 서경덕의 학문에 대한 논의와 기에 대한 해석의 차이, 평양에 남겨진 箕子井田의 보존, 고조선과 고구려의 토석 보존 등에 관한 학술 교유도 진행되었다.
정제두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소론화 경향성을 띄기는 하지만 그의 교유 관계 속에서 여전히 서인-노론계와의 관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학술 교유의 주요 내용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정제두를 ‘양명학을 연구한 소론 학자’의 틀에 가두기보다는 ‘당파에 관계없이 다양한 지적 활동을 영위한 학자’로 재평가해야 하겠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정제두와 서인-노론계 인물의 교유 관계
Ⅲ. 학술 교유의 주요 내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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