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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덕원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9호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49 - 7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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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520년 율령을 반포하였는데 17관등과 백관의 공복, 골품제도 등 상고기부터 시행되어 오던 관습과 제도, 법제 등 고유하고 전통적인 부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법령과 법률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는데, 특히 진흥왕대와 진평왕대에 중앙의 행정관부와 새롭게 복속한 지방민들에 대한 규정이 대폭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이것은 520년에 반포된 율령의 관련 조목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조문들이 증가하였다.
642년 대야성이 함락된 이후 김춘추는 왕권 강화와 지배체제의 개편을 구상하고, 적극적인 대당외교를 추진하여 당제를 수용하였다. 그리고 신라가 당제를 수용한 시기는 648년 김춘추가 당에 파견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651년부터 정국운영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것은 당 의관과 연호를 사용하는 한화정책의 추진과 집사부의 설치를 중심으로 하는 관제정비의 실시로 나타났다. 당제의 수용은 이후 골품제도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하는 등 신라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제의 정비는 신문왕대부터 새롭게 변화하여 성덕왕대의 활발한 대당외교와 경덕왕대의 지명과 관부 명칭의 변경으로 이어졌는데, 특히 중대의 전제왕권과 한화정책은 상호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신라가 당제를 수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관부는 당 중앙 관부의 핵심인 3성6부제를 실시하지 않고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집사부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라가 당제를 수용하여 관료제를 추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골귀족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신라 중대에 당제의 정비과정은 일정한 한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29년 집사부가 집사성으로 바뀌고 여러 관부들이 새롭게 설치되었던 하대에는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이후 태봉과 고려의 관제정비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당제의 수용 배경
Ⅲ. 나당동맹과 당제의 수용
Ⅳ. 당제의 정비와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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