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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은숙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7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1 - 24 (24page)
DOI
http://dx.doi.org/10.31097/KHR.2020.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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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강원지역은 몽골이 공략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기에 몽골의 4차 침입까지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그러나 南宋 공략을 위한 준비 성격이 강했던 몽골의 5차 침입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5차 침입의 결과 東州산성과 鳳儀산성 등이 함락되었고 春州道로 연결되는 高麗의 동·서 방어 전선이 무너졌다. 다만, 기마병 중심의 몽골군이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한 절벽에 가까운 ?原산성과 寒溪산성 등은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편, 남송원정에 앞서 고려와 남송의 관계를 단절시키려 했던 뭉케는 고려왕의 ‘出陸親朝’ 요구를 1256년부터는 ‘태자 친조’로 항복의 조건을 완화했고, 1259년에 고려가 이를 수용해 태자 王?을 친조시키면서 30여 년간 지속된 양국의 대립이 종식될 수 있었다. 강원지역은 여·원 관계를 공존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91년 鄕貢進士 元沖甲이 雉嶽城 전투에서 카단軍을 격퇴한 사건을 계기로 카단군을 가볍고 보는 마음이 생겼다. 이후 고려군의 맹추격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연기현 전투 패배 이후 카단군은 전력을 상실한 채 오합지졸로 흩어졌다가 카단의 자살로 반란이 종결되었다. 카단 반란이 고려의 도움으로 종결되자 쿠빌라이는 이례적으로 고려에게 진휼미를 보내고, 포로들에 대한 推刷는 물론이고 체릭 테무르가 훔쳐간 소 값까지 돌려줄 정도로 후대하였다. 나아가 충렬왕을 征東行省左丞相에 임명해 실제적 권한을 주었으며 金印과 공신 칭호도 하사했고, 이를 기반으로 충선왕은 제국 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었다. 이로써 고려왕은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에서 그 나름의 위상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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