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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영섭 (독립연구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8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276 - 313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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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이후 약 200여 년간 조선사회는 명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 속에서 안주해 왔다. 하지만 조선중기를 넘어서면서 새롭게 부상한 일본의 왜란과 후금(청)의 호란을 경험하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의 재편을 새롭게 의식하였다. 조선사회는 급변하는 국제질서를 의식하면서 변화에 대처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유교계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栗谷李珥, 1536~1584)를 주축으로 성리학의 심화를 이루어내면서 리학과 기학의 사상적 진전을 경험하였다. 반면 불교계의 교가에서는 운봉 대지(雲峰大智, 1606?~1690?)의 진성(眞性)의 일성(一性)과 다성(多性) 여부를 논한 진성일다논변(眞性一多論辨), 묵암 최눌(?庵最訥, 1717~1790)과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심성(心性) 논변, 또 연담 유일과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의 사기(私記) 논변 등이 일어났다. 또 선가에서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선교(禪敎) 논변과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과 초의 의순(草衣, 1786~1866) 등의 선지(禪旨) 논변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중인들과 거사들의 활약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중인들과 재가불자들의 자의식과 존재감 확대는 유자들의 대사회적 입지를 의식하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갔다. 중인들은 더 이상 시대정신을 이끌어가지 못하는 유학보다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겸비한 불학에 친연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문자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유자들과 불자들 뿐만 아니라 계층 간의 소통도 본격화되었다. 사찰 재정의 안정은 곧 불자의 자의식을 심화시켰으며 고승 비문의 수립과 문집의 편집 및 불서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의 대사회적 존재감을 확대시켰다. 18세기 후반의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활약과 19세기 전반기의 월창 김대현, 혜월유성종(유운), 오경석, 유대치, 이침산(李枕山) 거사 등의 활동은 새로운 집단지성들의 출현을 의미하였다. 이들은 불도유(佛道儒) 삼교를 넘나들면서도 점차 불자로서의 자의식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불교의 대사회적 입지는 확대되었으며 불학과 선학의 입지도 확장되어 갔다. 유자들 중에서는 중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불교계도 거사들의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이들은 불학과 유학의 소통을 모색하며 새로운 시대를 모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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